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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도미닉 세나(Dominic Sena), 주연 니콜라스 케이지(Nicolas Cage).
이 영화의 시간적 배경은 1200년대이다. 종교의 광기가 지배하고 있던 유럽, 초기 십자군 전쟁 시기에 많은 이들은 중동으로 떠난다. 혹자 부(富)를 찾아, 혹자 종교적 진실성, 즉 신앙을 시험하기 위해, 혹자 자신이 지은 죄를 사면받기 위해 기독교의 이교도와 전쟁을 벌인다. 니콜라스 케이지가 맡은 "베이먼"은 이렇게 십자군 전쟁에 참여했던 기사이다.

영화는 1235년 오스트리아의 필라흐에서 시작한다. 마녀 사냥의 열풍이 불고 있었다. 세 명의 여인이 마녀로 지목되어서 사제 앞에서 재판을 받았고, 마녀라는 사실을 시인했건, 그렇지 않았건 간에 모두 목이 매달려 강물에 처박힌다. 사제는 그렇게 처형한 마녀들을 끌어올려 "솔로몬의 열쇠"라고 하는 기도를 드려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은 싸늘하기만 하다. "목 매달아 물에 처박았으면 되었지 않소." 성실한 사제는 밤에 혼자서 3구의 시체를 끌어 올려 기도를 올린다. 첫 번째 여성은 기도를 받았다. 두 번째 여성은 기도를 드리자 몸이 꿈틀꿈틀대면서 토사물을 토하다 멈추었다. 세 번째 여성을 끌어올리려던 때, 사제는 오히려 끌려들어가 물에 처박히고 물에서 가까스로 벗어난 그의 앞에는 부패된 세 번째 여성이 서 있었고, 사제는 "솔로몬의 열쇠"로 기도를 올리려 했으나, 사제의 책은 세 번째 여성의 힘에 의해 불살라진다.

이 부분은 두 가지 커다란 전제를 보인다. 첫째로 중세 마녀 사냥에서 그러했듯이 어떠한 확증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힘없는 여성들을 심판한다는 고전적인 것이다. 실제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식의 마녀 사냥은 15세기 후반에서야 성행하였지만, 보통 많은 사람들의 뇌리에 박혀 있는 것처럼, 마녀 사냥이 13세기에 이루어진 것으로 연대를 끌어 내렸다. 둘째로 마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보였다. 애초에 "판타지 액션 대작"이라는 광고 문구를 사용하던 영화였기는 하나, 이 영화의 내용이 환상적 배경이라는 것을 적나라하게 까발린다. 또한, 기도서를 초자연적인 힘을 통해 불태움으로서 교회의 권능이 무력하다는 것을 보인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전제는 서로 융합되어 보이지를 못한다.

베이먼과 펠슨은 십자군 소속이다. 애초에 십자군이란 무리들이 여러 정치적인 이유로 결성되었다는 것을 이제는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 그래도 그나마 초기의 십자군(11세기)이 종교적 열정을 가장 순수하게 보존하고 있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십자군이 같은 기독교 국가(헝가리)를 공격하고 비잔티움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여 라틴 제국을 세운 것이 1202-1204년의 십자군이다. 영화의 시작은 노년의 베이먼과 펠슨이 나왔다 하더라도 그 타락성을 회복할 수 없는 시기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절도죄와 간통죄를 용서받기 위해 종군한 이들은 시대에 어울리지 않게 순수했던 이로도 볼 수도, 더 이상 고향에서 악행이 용납받지 못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강제적으로 종군한 이로도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음 이슬람 사람들과의 전투 장면에서 보이는 이들의 장비는 돈없고 배경 없는 일반병의 장비와는 크게 달랐다.

그런 베이먼과 펠슨이 십자군에서 이탈하게 되는 과정이 또 묘하다. 수많은 전투를 치르다가 민간인을 죽인 이후에 베이먼은 십자군에서 이탈하게 되고, 펠슨은 아무런 납득이 가는 설명 없이 그와 동행한다. 이러한 전쟁에서 공성전 이후에 약탈과 학살은 일상적이었다. 승자의 당연한 권리로도 여겼으며, 심지어 같은 기독교인들에게까지도 그러한 행위를 자행하였다. 수 년간 복무를 해 온 이들이 갑자기 마음을 바꾸고 탈영병이 된 이유가 완전히 납득이 가는 것은 아니지만, 이해를 못할 만한 성질의 것은 아니다. 인간은 갑자기 미친 짓도 하기 마련이니까. 문제는 그들의 개인적인 행동이 문제가 아니다. 그들의 행동을 올바르고 정당하다고 인정한다면, 그들과 반대하는 교회 세력의 행위는 그르다고 할 수 밖에 없다. 마녀 처형의 장면에 비추어 보면 헷갈리게 된다. 마녀는 존재하고 교회는 무력하다. 본디 무력한 것인가, 타락해서 무력한 것인가. 과연 마녀 사냥에 사용한 논리가 옳다면(마녀가 실제로 존재하니까), 이교도에 대한 전쟁 또한 옳은 것인가.

고향으로 돌아가던 베이먼과 펠슨이 여차저차해서 마녀로 지목 당한 소녀의 호송에 동참하게 되었는데, 여기서 또 아리송하다. 교회는 이전에 보인 주먹구구식의 방법으로 소녀를 마녀로 지목한 것으로 보인다[각주:1]. 마녀가 실제로 존재하는데 이 소녀가 정말 마녀는 아닐까라는 생각은 솟아나고, 소녀가 보이는 초인적인 힘은 마녀일 것이라고 확신하게 한다[각주:2].

목적지인 수도원에 도착했을 때, 소녀는 마녀가 아니라 악마라는 게 드러나고, 애초에 수도원을 목표로 삼아 수도원에서 필사하고 있던 "솔로몬의 열쇠"를 손에 넣어 없애버리려는 게 목적이었음을 알린다. 지금까지 멍청하고 무의미한 교회의 행적을 보였으면서, 악마는 "솔로몬의 열쇠"를 읊는 사제 앞에서 고통스러워 하는 모습을 보이니, 더 헷갈린다. 사본은 다 초자연적인 힘을 통해 불살라 버리면서, 막상 진품은 제대로 손도 대지 못한다. 영화의 처음을 기억한다면, 미완성이라 불이 붙는 게 아니라, 사본이라 불이 붙는 듯 싶다. 그리고 결국 악마는 "솔로몬의 열쇠" 기도를 완전히 마치자 잿더미가 되어 사라지고, 악마가 들러 붙어 있던 소녀만이 "알몸"으로 남겨진다.

그리고, 흑사병이 사람들에게는 그저 앓고 지나는 병으로 지나갔을지 몰라도, 이를 물리치기 위한 용사들의 헌신이 있었다는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는 대사가 흘러 나온다.

도대체 영화에서 이야기 하고자 하던 것은 무엇인가. 교회는 병신 같은 짓을 했지만, 마녀를 잡을 수 있는 것은 결국 신의 은총 뿐이라는 것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인가. 베이먼과 같이, 병신 같은 교회를 거부하는 것은 온당한 일이지만, 결국 신의 은총이 모두를 감싸안고 있다는 기독교적 이데올로기인가. 그저 마녀 사냥을 주제로 삼았지만, 그저 전통적인, "부당하게 살해당한 여성들"이라는 주제에서 벗어나고 싶었음을 보이려는 것인가.

니콜라스 케이지(베이먼)는 주연보다는 빛나는 조연 자리를 찾아 보는 게 더 낫지 않을까. 론 펄먼(펠슨) 쪽은 확실히 매력 있는 배우이고, 괜찮은 연기력을 보였는데, 베이먼과 펠슨은 흡사 버트 캐서디와 선댄스 키드를 보는 듯 했다(비록 베이먼이 무능력한 이는 아니었지만). 사제 데벨자크는 마녀와 교회라는 영화으 두 가지 상반되는 전제에 갇혀서 감정을 이입시키기 쉽지 않다. 과연 이 놈은 교회의 광기에 떠밀린 똘아이인가, 아니면 신실한 사제인가(둘다 맞는 것 같지만). 흑사병으로 가족을 잃은 기사 에크하르트와 사기죄를 사면받기로 하고 길잡이가 된 하가마는 커다란 개성을 보이는 이는 아니다. 마녀를 돋보이게 하는 이들로서, 그 본연의 임무에 충실해서, 적당한 때에 적당히 잘 죽었다. 광고문구에는 "6인의 기사단이 온다"는 식으로 주연인것처럼 이야기를 해 놓고 극중 비중은 낮게 잡아놔서 배신감을 느꼈다는 게 문제랄까. 카이는 극중 비중은 낮지만 기사 지위와 여자와 진품 "솔로몬의 열쇠"를 손에 넣은 진정한 승자. 게다가 악마도 퇴치했다. 악마는 CG를 통해서 만들어 졌는데, 압도적인 부피를 자랑하고 압도적인 힘을 자랑해도 큰 인상을 지울까말까 하는데, 비리비라하게 생겨서 "솔로몬의 열쇠" 탓에 제대로 접근도 못하고 좀비 수도사 졸개만을 이용해서 깔짝대다가 격퇴당했다. 최종보스 치고는 부실하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마녀 역을 맡은 클레어 포이는 이게 소녀인지 마녀인지 아리송하게 할 정도의 연기력을 보였다. 물론 각본 상의 안배로 갈수록 마녀(사실은 악마가 씌인 것이지만)라는 것이 확연하게 드러나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호소력 있는 눈망울을 보면 "그래 오빠가 잘못 생각했다"고 여기게끔 한다.

그 외에 크리스토퍼 리가 출연했다는 것이 출연진 자막에 나와서, "이 영감이 어디 나왔지?" 하고 생각을 했는데... 생각해 보니 나올 만한 역할은 그거 하나 밖에 없더라.
  1. "이 소녀가 지나간 마을마다 흑사병이 돌았소." 이게 확신하게 된 증거라니.(내 Sense Motive를 믿어!) [본문으로]
  2. 극중 가장 덩치가 큰 펠슨을 집어던진다거나, 일행을 습격하는 늑대를 험상궂게 바꾸어 놓는다거나(wolf 가 dire wolf로 변신!), 추락사할 위기에 처한 카이를 한 손으로 들어올린다거나...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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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

밥상뒤엎기 2011/01/09 17:44 Posted by 미친엘프
미친엘프가 삼국지의 여러 판본을 다양하게 접해 본 것은 아니고, 기실 삼국지의 애호가라고 할 정도의 내공도 없지만, 어린 시절 삼국지를 접해 보고, 그와 관련된 게임 · 만화 · 소설 등의 매체를 통해 많은 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여전히 그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관심을 갖고 들여다 보기 일쑤다. 그럼에도 삼국지에 대한 애정으로 중문이나 사학을 전공으로 택한 분들에 비하다면 미친엘프가 갖고 있는 지식은 얄팍한 상식 수준에 불과하다.

미친엘프가 접해 본 삼국지란, 아주 어린 시절 읽었던 아이들을 대상으로 했던 삼국지가 있고(그것도 두 종류인데, 보다 어린이를 대상으로 한 1권짜리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5권짜리였다), 친구 ㄱ군의 집에 있던 오래된 서적의 삼국지가 있고, 한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이문열 평역 삼국지》 정도가 있다. 만화로는 요시카와 에이지(吉川英治)의 삼국지를 바탕으로 한 요코야마 미쓰테루(横山光輝)의 《전략 삼국지》를 TV에서 할 때에 본 기억이 있으나, 이를 만화책으로는 전 질로 본 적은 없고, 고우영의 만화 삼국지 또한 성인이 되어서야 접했을 따름이다. 그러므로 미친엘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삼국지란 친구 ㄱ군의 집에 있던 삼국지이다. 그 책을 친구가 분실하여 어떤 판본인지 알 길은 없으나, '어마 뜨거라'라는 여전히 기억에 남는 표현을 미루어 보아 《월탄 삼국지》가 아닌가 싶다.

조금 머리가 굵어졌을 때, 세상을 들썩이게 한 이문열 평역을 보았을 때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삼국지에 여러 판본이 존재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나, 어떠한 판본을 저본으로 삼는가 등의 학문적 관점에서의 시각을 갖추지 못했을 시기였다. 뿐만 아니라, 그의 '평'과 같은 것도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것으로 생각을 했을 뿐이다. 다시 말해, 어떠한 삼국지건 역사소설로서 개인의 새로운 창작물로 보았고, 따라서 그에 대한 평이 들어가는 것도 당연하며, 예전의 판본을 번역하였다는 관념은 갖지 못했다 하겠다. 물론, 글의 문체의 특성을 판단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었음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이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어떠한 삼국지건 간에, 삼국지를 조금 읽은 셈인데도 성인을 대상으로 한 삼국지는 한 번도 소유한 적이 없었다.

그리하여 큰 마음을 먹고 삼국지를 전 질 구입하였다. 그것도 두 종류나.

정원기 교수의 《정역 삼국지》와 리동혁 씨의 《본 삼국지》이다. 삼국지 애호가로서, 한 질도 없다는 것은 어찌보면 부끄러운 일이라 생각하여, 한 질은 구입을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시중에 있는 수 많은 삼국지 중에서 어떤 삼국지를 구입할 것인가에 대해서 전뇌공간에서 자료를 수집하였다. 국문판 삼국지도 수많은 판본이 난립하고 있는데, 미친엘프처럼 삼국지를 한 질 소유하고자 하는데 어떤 것이 낫고 못한가, 또한 어떤 것이 어떠한 특징이 있는가와 같이, 궁금증을 가진 사람도 많았을 터이고, 이러한 이들을 위해서 몇몇 이들이 어떤 점이 좋고 나쁜지를 평가한 글들도 살펴 보았다.

정원기 교수에 대해 알게 된 것은 삼국지 관련 서적을 도서관에서 발견하고 읽으면서인데, 적지 않은 나이에 삼국지에 대한 애정으로 그에 대한 학문의 길을 택했다는 이야기를 보고는 범상치 않음을 느꼈고, 이후 정원기 교수가 쓴, 그리고 옮긴 다른 책을 보고 그의 책에 대해 신뢰할 만하다는 평가를 내리게 되었다. 범우사에서 출간한 《삼국지사전》은 그러한 결과로 구입한 책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정역 삼국지》는 연구자이자 학자로서 정원기 교수가 제대로 번역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점찍어 두었었다. 책은 보지도 않았으면서 삼국지를 추천해 달라고 하는 이에게 어줍짢은 애호가로서 《정역 삼국지》를 추천하기도 했다.
(황석영 씨의 삼국지에 대한 비판 글을 신문에 게재하여 주목을 끌기도 했다)

한편, 전뇌공간 사이트 중 하나이자 전적으로 신뢰를 할 수는 없지만 어떤 면에서는 대단한 입지를 지닌DC INSIDE의 갤러리 중 삼국지갤러리에서 《본 삼국지》에 대한 평가가 상당히 좋았다고 한다. 어떤 이는, 정역류로 처음 접하는 이는 《정역 삼국지》를 추천하며, 이른바 조금 봤다 하는 독자는 《본 삼국지》를 추천하기도 했다. 《정역 삼국지》에 대해서는 큰 이야기가 없는 한편, 《본 삼국지》에 대해서는 보는 이들마다 애호가들에게 있어서 '최고'라는 표현까지 써가면서 추천을 하는 것도 보았다. 삼국지를 아예 처음 보는 것이 아닌, 조금 봤다 하는 미친엘프로서는 갈등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다.
(리동혁 씨가 유명세를 탄 것은 바로 이문열 평역에 대한 비판서인, 《삼국지가 울고있네》를 통해서라 한다.)

고민을 하다가 《정역 삼국지》를 구입하였다. 본편10권과 부록 1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질로 사고자 하였으나 마땅한 것이 없어, 가격 비교를 하여 온라인 매장에서 낱권으로 구입하였다. 본편만큼 필히 있어야 하는 것이 바로 부록으로, 이 부록에 교리일람표와 모종강의 '어떻게 삼국지를 읽어야 할 것인가'가 들어 있다. 《정역 삼국지》는 저본으로 삼은 책의 오류를 고치지 않으면 의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부분을 제외하면, 본문 자체에는 거의 손을 대지 않았다. 따라서 삼국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아는 사람이 보았을 시에는 부족함이 느껴질 만 하다. 하지만 부록의 교리일람을 곁에 두고 본다면, 이러한 면이 많이 나아진다. 중국 삼국지 연구 전문가라는 심백준 선생의 교리로, 1천여 개 이상의 오류를 집어 낸 교리라며, 이를 옮긴 정원기 교수는 이를 자랑으로 삼는 듯 하고, 그간 연구의 집약이라 할 수 있겠다.

미친엘프가 생각하기로는, 호오에 따라 달라질 만한 부분이나, 부록으로 교리서를 내기 보다는 본문에 각주를 통해 이를 밝히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책 두 권을 함께 펴 놓고 보는 것은 쉽지 않은 노릇이다. 마음 같아서는 포스트잇을 사용하여 이를 책으로 옮기고 싶은 생각도 든다.

《정역 삼국지》를 보고 나서, 《본 삼국지》에 대한 흥미가 돋았다. 전뇌공간에서 맛보기로 보여준 부분은 단순한 글을 옮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야기들이 포함되어 있는 듯 했다. 도대체 어떻게 구성이 되어 있기에 사람들이 그렇게 극찬을 하는 것인가. 같은 책을 두 질을 구입한다는 것은 낭비라 생각되었기 때문에 고민을 하였다. 이 책도 10권 본편에 1권 부록으로 구성이 되어 있는데, 1권 부록의 내용이 관직과 인명 모음이기에, 다른 책을 사면서 이 부록만을 따로 구입하였다. 본편의 하나하나는 불가분할 수 없는 반면, 이 부록은 분리하여 볼 수 있으니, 이 부록을 보고 판단하여 본편을 구입할 것인가를 결정하기로 했다. 꽤나 두툼하고, 내용이 상당히 충실하다고 판단하여, 《본 삼국지》에 대한 흥미는 가중되었고, 마침내 이 또한 전 질을 구입하고 말았다.

과연 《본 삼국지》는 《정역 삼국지》와는 다른 특징이 있다. 《본 삼국지》는 본편에서 인용된 고사들이 어떤 연유에서 나온 것인지를 밝혔다. 또한 한 회가 끝날 때 마다(삼국지는 본디 이야기꾼의 이야기로 되어 있어 가정본 이후로 120회로 고정되었다 한다) 삼국지에 관련 된 사설을 넣어 두었는데, 이 사설이 볼 만 하다. 이문열 평역을 비판한 《삼국지가 울고 있네》와 겹치는 부분이 많은데, 생각지도 못했던 중국 문화에 대한 지식은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이야기들이다. 1권의 마지막에는 삼국시대 이전, 하 · 은 · 주 삼대와 진한(秦漢)의 이야기를 넣어 놓았고, 마지막 편인 10권의 마지막에는 진(晉)의 삼국통일 후, 그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는 점이 참 마음에 들었다. 중국어를 모르는 미친엘프가 번역의 질에 대해 논할 수는 없지만, 이는 중국어 또는 한어를 할 줄 아는 이의 평가에 따르는 수 밖에 없다.
(중국어 표현을 뒤에 넣은 것은 사족이라 생각하지만, 중국어 학습을 하고자 하는 이에게는 도움이 될 수도 있겠다.)

중간에 들어 있는 지도는 그 상황에 맞는 여러 지명이 나와서 중국의 옛 지명에 익숙치 않은 이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사실 삼국지는 여러 전장을 오가며 이야기가 벌어지는데, 이름난 큰 지명의 경우에는 조금 삼국지를 보았다 싶은 이들은 익숙할지 몰라도, 지방의 한 지명은 왠만큼 보지 않고서는 어느 곳에 위치해 있는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에는 그러한 장점 만큼이나 단점도 존재한다. 우선 모종강본(모본)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고 있으면서, 삼국지 12본을 참조하여 오류를 고쳤다고 하는데, 그러면서도 최우선적으로 삼은 저본은 결국 모본이다(리 씨는 '인문본'이라고 하는데, 이도 모본에 기초를 둔다고 한다). 게다가 이는 삼국지의 발전 과정을 생각한다면 이는 말이 되지 않는다. 고전문학 연구에 있어서 이러한 판본 하나 하나는 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음은 당연하다. 이를 무시한 채로 오류를 고쳐서 한데 묶었다고 하는 것은 '리동혁 본'의 삼국지는 될 지언정, 이를 '정역'이라고 이야기 할 수는 없다.

또한 가정본을 '나관중본'이라고 하여 모본(인문본)의 군데군데에 표를 하여 생략된 부분을 집어 넣었는데,  이것이 나관중본이라고 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는 것이 연구자들의 이야기인듯 하다. 그럼에도 이를 '나관중본'이라고 넣는 것은 처음 읽는 이들에게 잘못된 선입관을 안겨줄 여지가 있다. 어느 본이건 간에, 명청 시기를 전해 오며 인쇄를 하여 퍼진 판본이기 때문에, 실제로 나관중이 모아서 저술한 책이 어떤 것인지는 실물이 발견되지 않는 한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없고, 가정본은 인쇄된 판본 중에서 가장 오래된 것이라 본래 모습에 가까울 것이라 어림짐작 할 뿐이다.

역자의 평이 중간 중간에 끼어들어가 있는 것은 장점일 수도 있고 단점일 수도 있다. 미처 생각을 하지 못했던 부분에 대해서 설명을 해 주고 평하는 부분을 표를 하여 넣어 두었다. 그러나 이는 원본의 통일성을 저해하는 부분이다(이것이 중국식 주해 방식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이를 '평역'이라 한다거나 '리동혁 본'이라고 한다면 그럴 수도 있다 생각하나, 정역을 자처하는 글로서는 이는 단점이라 하겠다. 글읽기를 방해하고 예전 글에 없는 내용을 자의적으로 끼워 넣은 글이기 때문이다. 이는 각주로 넣었다면 훨씬 보기에 편했을 듯 싶다.

리동혁 씨는 모본에 대한 거부감을 숨기지 않고 있다. 이것이 숭유억조 성향이 강화된 모본에 대한 거부감인데, 이러한 점이 유촉보다 조위나 손오를 보다 좋아하는 이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듯 하다. 가정본에서의 온갖 영웅들의 모습이 모본에 와서 가치절하되었다고 이야기 하니 말이다. 그게 안타까웠다고 한다면 가정본을 저본으로 삼았어야 할 말이다. 모본을 저본으로 삼고 이를 비판하는 것은 이문열 평역 삼국지에서도 보이는 점이다.

위와 같은 문제로 《본 삼국지》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타인에게 추천하기가 꺼려진다. 어느 정도 여러 삼국지를 본 사람에게는 권할 만하다. 모르고 있었던 새로운 것에 대해서 아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러나 이것은 이게 틀렸고, 저것은 저게 틀렸고 하는 지적과 비판이 우선되는 느낌에, 처음 삼국지를 접하는 이는 한 가지 저본을 바탕으로 한 정역을 접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정원기 교수가 운영하는 삼국지 연구소에서 <국내번역본의 문제점>이란 제목의 글을 연결고리에 넣으며 이 잡글을 마무리 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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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의 의열단 조선혁명선언 전문

참조 2011/01/09 16:19 Posted by 미친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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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 일본이 우리의 국호를 없이하며, 우리의 정권을 빼앗으며, 우리의 생존적 필요조선을 다 박탈하였다. 경제의 생명인 산림, 천택, 철도, 광산,  어장 내지 소공업 원료까지 다 빠앗아 일체의 생산기능을 칼로 베이며 도끼로 끊고, 토지세, 가옥세, 인구세, 가축세, 백일세, 지방세, 주초세, 비료세, 종자세, 영업세, 청결세, 소득세,,, 기타 각종 잡세가 날로 증가하여 혈액은 있는 대로 다  빨아가고, 어지간한 상업가들은 일본의  제조품을 조선인에게 매개하는 중간인이 되어 차차 자본집중의 원칙하에서 멸망할 뿐이오, 대다수 인민과 일반농민들은 피땀을 흘리어 토지를 갈아, 그 일년 내내 소득으로 자기  한 몸과 처자의 호구거리도 남기지 못하고, 우리를 잡아먹으려는 일본 강도에게  갖다바치어 그 살을 찌워주는 영원한  소,말이 될 뿐이오,  끝내는 그 소,말의 생활도 못하게 일본이민의 수입이 해마다 높고 빠른 비율로 증가하여 "딸깍발이" 등쌀에, 우리 민족은 발 디딜 당이 없어 산으로 물로 서간도로 북간도로 시베리아의 황야로 몰리어 가 굶주린 귀신으로부터 떠돌아 다니는 귀신이 될 뿐이며, 강도 일본이 헌병정치, 경찰정치를 힘써 행하여 우리 민족이 한 발짝의 행동도 마음대로 못하고, 언론, 출판, 결사, 집회의 일체 자유가 없어,  고통과 울분과 원한이 있으면 벙어리의 가슴이나 만질 뿐이오, 행복과 자유의 세계에는 눈 뜬  소경이 되고, 자녀가 나면, '일어를 국어라, 일문을 국문이라' 하는 노예양성소-학교로 보내고, 조선사람으로 혹 조선사를 읽게 된다 하면 '단군을 속여 스사노오노미코토의 형제'라 하여  '삼한시대 한강 이남을 일본이 다스리는 땅'이라  한 일본놈들의 적은 대로 읽게되며 신문이나 잡지를 본다 하면 강도정치를 찬미하는 반일본화한 노예적 문자뿐이며, 똑똑한 자제가 난다 하면 환경의 압박에서 세상을 비관하고 절망하는 타락자가 되거나 그렇지 않으면 '음모사건'의  명칭하에 감옥에 구류되어, 주리를 틀고 목에 칼을 씌우고, 단근질, 채찍질, 전기질, 바늘로 손톱 밑과 발톱 밑을 쑤시는, 팔다리를 달아매는, 콧구멍에 물 붓는,새식기에 심지를 박는 모든 악형, 곧  야만 전제국의 형률, 사전에도 없는 갖은 악형을 다 당하고 죽거나, 요행히 살아 감옥문에서 나온대야 평생 불구의 폐인이 될 뿐이라. 그렇지 않을지라도 발명 창작의 본능은 생활의 곤란에서 단절하며, 진취 활발의 기상은 처한 형편의 압박에서 소멸되어 '찍도 짹도' 못하게 각 방면의 속박, 채찍질, 구박, 압제를 받아,  바다에 둘러싸인 삼천리가 하나의 큰  감옥이 되아, 우리 민족은 아주 인류의 자각을 잃을 뿐 아니라, 곧 자동적  본능까지 잃어 노예부터 기게가 되어 강도수중의 사용품이 되고 말 뿐이며, 강도 일본이 우리의 생명을 지푸라기로 보아, 을사 이후 13도의 의병 나던 각 지방에서 일본군대가 행한 폭행도 이루 다 적을 수 없거니와, 즉 최근 3.1운동 이후 수원, 선천 등이 국내 각지부터 북간도, 서간도, 노령 연해주 각처까지 도처에 주민을 도륙한다. 촌락을  불지른다, 재산을 약탈한다, 부녀를  능욕한다, 목을 끊는다, 산  채로 묻는다, 불에 사른다, 혹 몸을 두 동가리 세 동가리로 내어 죽인다, 아동을 잔혹하게 다룬다, 부녀의 생식기를 파괴한다 하여, 할 수 있는 데까지 참혹한 수단을 써서  공포와 전율로 우리 민족을 압박하여 인간의 '산 송장'을 만들려 하는도다.  

  이상의 사실에 따라 우리는 일본 강도정치 곧 이조통치가 우리 조선 민족 생존의 적임을 선언하는 동시에, 우리는 혁명수단으로 우리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을 죽여 없앰이 곧 우리의 정당한 수단임을 선언하노라.  

  2

  내정독립이나 참정권이나 자치를 운동하는 자-누구이냐?  

  너희들이 '동양평화' '한국독립보전' 등을  담보한 맹약이 먹도  마르지 아니하여 삼천리 강토를 집어먹던 역사를 잊었느냐? '조선인민  생명재산 자유보호' '조선인민 행복증진' 등을 신명한 선언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여 2천만의 생명이 지옥에 빠지던 실제를 못 보느냐? 3.1운동 이후에 강도 일본이 또 우리의 독립운동을 완화시키려고 송병준, 민원식 등  한 두 매국노를 시키어 이 따위  미친 주장을 부름이니, 이에 부화뇌동하는  자-맹인이 아니면 어찌 간사한 무리가 아니냐?  

  설혹 강도 일본이 과연 관대한 도량이 있어 이들의 요구를 허락한다 하자. 소위 내정독립을 찾고 각종 이권을 찾지 못하면 조선민족은 온통 굶주린 귀신이 될 뿐이 아니냐? 참정권을 획득한다 하자. 자국의 무산계급의 혈액까지 착취하는 자본주의 강도국의 식민지 인민이 되어 몇몇 노예 대의사의 선출로 어찌 굶어죽는 화를 면하겠느냐?  자치를 얻는다 하자. 그 어떤 자치임을 막론하고 일본이 그 강도적 침략주의의 간판인 '제국'이란 명칭이 존재한 이상에는, 여기에  딸려 있는 조선인민이 어찌 구구한 자치의 헛된 이름으로써 민족적 생존을 유지하겠느냐?  

  설혹 강도 일본이 갑자기 부처, 보살이 되어 하루아침에  총독부를 철폐하고 각종 이권을 다 우리에게 돌려주며, 내정과 외교를 다 우리의 자유에 맡기고 일본의 군대와 경팔을 일시에 철수하며, 일본의 이주민을  일시에 소환하고 다만 이름뿐인  종주권만 가진다 할지라도 우리가 만일 과거의 기억이 모두 없어지지 아니하였다 하면 일본을 종주국으로 받든다 함이 '치욕'이란 명사를 아는 인류로는 못할지니라.  

  일본 강도 정치하에서 문화운동을 부르는 자-누구이냐?  

  문화는 산업과 문물의 발달한 총적을  가리키는 명사니 경제약탈의 제도하에서  생존권이 박탈된 민족은 그 종족의 보전도 의문이거든, 하물며 문화발전의 가망이 있으랴? 쇠망한 인도족, 유태족도 문화가 있다 하지만, 하나는 금전의 힘으로 그 조상의 종교적 유업을 계속함이며, 하나는 그 토지의 넓음과  인구의 많음으로 오랜 옛날 자유롭게  발달한 남은 혜택을 지킴이니,  어디 모기와 등에같이, 승냥이와 이리같이 사람의 피를 빨다가 골수까지 깨무는 강도 일본의 입에 물린 조선 같은 데서 문화를 발전 혹 지킨 전례가 있더냐? 검열, 압수 모든 압박 중에 몇몇 신문, 잡지를 가지고 '문화운동'의 목탁으로 스스로 떠들며, 강도의 비위에 거스르지 아니할 만한 언론이나 주창하여 이것을 문화발전의 과정으로 본다 하면, 그 문화발전이 도리어 조선의 불행인가 하노라.  

  이상의 이유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생존의  적인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내정독립,자치,참정권 등을 주장하는 자)나 강도 정치하에서 기생하려는 주의를  가진 자(문화운동자)나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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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도 일본의 구축을 주장하는 가운데 또 다음과 같은  논자들이 있으니, 첫째는 외교론이니, 이조 5백년 문약 정치가 '외교'로써 나라를 지키는 으뜸 계책으로 삼아 그 말세에 더욱 심하여, 갑신 이래 유신당, 수구당의 성쇠가 거의 괴욱의 원조 유무에서 판결되며, 위정자의 정책은 오직 이 나라를 끌어들여 저 나라를 제압함에 불과하였고, 그 의뢰하는 습성이 일반 정치사회에 전염되어 즉 갑오, 갑진  양전쟁에 일본이 수십 만의 생명과  수억 만의 재산을 희생하여  청,러 양국을 물리치고, 조선에 대하여 강도적 침략주의를 관철하려 하는데 우리 조선의 '조국을 사랑한다, 민족을 건지려 한다' 하는 이들은 한 자루의 칼과 한방의 총알로 어리석고 탐욕스러우며 포악한 관리나 나라의 원수에게 던지지 못하고, 청원서나 여러 나라 공관에 던지며  탄원서나 일본정부에 보내어 국세의  외롭고 약함을 슬피 호소하여 국가존망, 민족사활의 대문제를 외국인 심지어 적국인의 처분으로 결정하기만 기다리었도다.  

그래서 '을사조약' '경술합병'-곧 '조선'이란 이름이 생긴 뒤 몇 천년 만의 처음  당하던 치욕에 조선민족의 분노적 표시가 겨우 하얼빈의 총, 종로의 칼, 산림유생의 의병이 되고 말았도다.    아! 과거 수십 년 역사야말로 용기 있는 자로 보면 침 뱉고 욕할 역사가 될 뿐이며, 어진 자로 보면 상심할 역사가 될  뿐이다. 그리고도 나라가 망한 이후  해외로 나아가는 아무개 지사들의 사상이 무엇보다도 먼저 '외교'가 그 제1장 제1조가 되며, 국내 인민의 독립운동을 선동하는 방법도 '미래의 미일전쟁, 러일전쟁 등 기회'가  거의  천편일률의 문장이었고, 최근 3.1운동에 일반 인사의 '평화회의 국제연맹'에 대한 과신의 선전이 도리어 2천만의  민중의 용기있게 분발하여 전진하는 의기를 쳐 없애는  매개가 될 뿐이었도다.  

  둘째는 준비론이니, 을사조약 당시에 여러 나라 공관에 빗발돋듯 하던 종이쪽지로 넘어가는 국권을 붙잡지 못하며, 정미년의 헤이그 밀사도 독립회복의 복음을 안고 오지 못하매, 이에 차차 외교에 대하여 의문이 되고 전쟁 아니면 안되겠다는 판단이 생기었다. 그러나 군인도 없고 무기도 없이 무엇으로써 전쟁하겠느냐? 산림유생들은 춘추대의에 성패를  생각하지 않고 의병을 모집하여 높은 관을 쓰고 도포를 입은 채로  지휘의 대장이 되며, 사냥 포수의 화승총을 몰아가지고 조일전쟁의 전투선에 나섰지만 신문  쪼가리나 본 이들-곧 시세를 짐작한다는 이들은 그러할 용기가  아니난다. 이에 '오늘 이 시간에 곧 일본과 전쟁한다는 것은 망발이다. 총도 장만하고 돈도  장만하고 대포도 장만하고 장관이나  졸병감까지라도 다 장만한 뒤에야 일본과  전쟁한다' 함이니,  이것이 이른바 준비론 곧  독립전쟁을 준비하자 함이다.

외세의 침입이 더할수록 우리의 부족한 것이 자꾸 느껴지고, 그 준비론의 범위가 전쟁 이외까지 확장되어 교육도 진흥해야겠다. 상공업도 발전해야겠다. 기타 무엇 무엇 일체가 모두  준비론의 부분이 되었다. 경술 이후 각 지사들이 혹 서,북간도의 삼림을 더듬으며, 혹 시베리아의 찬바람에 배부르며, 혹 남,북경으로  돌아다니며, 혹 미주나 하와이로  돌아가며, 혹 경향에 출몰하여 십여 년 내와 각지에서 목이 터질 만치 준비!준비!를 불렀지만, 그 소득이 몇 개 불완전한 학교와 실력없는 모임뿐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성의 부족이 아니라 실은 그 주장의 착오이다. 강도 일본이 정치, 경제 양방면으로 구박을 주어 경제가 날로 곤란하고 생산기관이 전부 박탈되어 입고 먹을 방법도  단절되는 때에 무엇으로? 어떻게? 실업을 발전하며, 교육을 확장하며, 더구나 어디서? 얼마나? 군인을 양성하며,  양성한들 일본 전투력의 백분의 일에 비교되게라도 할 수 있느냐? 실로 한바탕의 잠꼬대가 될 뿐이로다.  

  이상의 이유에 의하여 우리는 '외교' '준비' 등의 미몽을 버리고 민중 직접혁명의 수단을 취함을 선언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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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민족의 생존을 유지하자면 강도 일본을 구축할지며, 강도 일본을 구축하자면 오직 혁명으로써 할 뿐이니, 혁명이 아니고는 강도 일본을 구축할 방법이 없는 바이다.  

  그러나 우리가 혁명에 종사하려면 어느 방면부터 착수하겠느뇨?  

  구시대의 혁명으로 말하면, 인민은 국가의 노예가 되고 그  이상에 인민을 지배하는 상전  곧 특수세력이 있어 그 소위 혁명이란 것은 특수세력의  명칭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다시 말하자면 곧 '을'의 특수세력으로 '갑'의특수세력을 변경함에  불과하였다. 그러므로 인민은 혁명에 대하여 다만 갑,을 양세력 곧 신,구 양상전  중 누가 더 어질고 누가 더 푸악하며 누가 더 선하고 누가 더 악한가를 보아 그 향배를 정할 뿐이요, 직접 관계가  없었다.  그리하여 '임금의 목을 베어 백성을 위로한다'가 혁명의 유일한 근본취지가 되고 '한 도시락의 밥과 한 종지의 장으로써 임금의 군대를  맞아들인다'가 혁명사의 유일한 미담이 되었거니와, 오늘날 혁명으로 말하면 민중이 곧 민중 자기를 위하여 하는 혁명인 고로 '민중혁명'이라 '직접혁명'이라 칭함이며, 민중 직접의 혁명인  고로 그 비등, 팽창의 뜨거운  정도가 숫자상 강약 비교의 관념을 타파하며, 그 결과의 성패가 매양  전쟁학상의 정해진 궤도에서 벗어나 돈 없고 군대 없는 민중으로 백만의 군대와  억만의 부력을 가진  제왕도 타도하며 외국의 도적도 구축하나니, 그러므로 우리 혁명의 첫 걸음은 민중각오의 요구니라.  

  민중이 어떻게 각오하느뇨?  

  민중은 신인이나 성인이나 어떤 영웅호걸이 있어 '민중을  각오'하도록 지도하는 데서 각오하는 것이 아니요, '민중아, 각오하자' '민중이여, 각오하여라' 그런 열렬한 부르짖음의 소리에서 각오하는 것도 아니오.  

  오직 민중이 민중을 위하여 일체 불평, 부자여느 불합리한  민중향상의 장애부터 먼저 타파함이 곧 '민중을 각오케'하는 유일방법이니, 다시 말하자면 곧 먼저 깨달은 민중이 민중의 전체를 위하여 혁명적 선구가 됨이 민중각오의 첫째 길이니라.  

  일반민중이 굶주림, 추위, 피곤, 고통,처의 울부짖음,  어린애의 울음, 납세의 독촉, 사채의 재촉,행동의 부자유, 모든 압박에 졸리어, 살려니 살 수 없고 죽으려 하여도 죽을 바를 모르는 판에, 만일 그 압박의 주인 되는 강도정치의 시설자인 강도들을 때려누이고, 강도의 일체 시설을 파괴하고, 복음이 사해에 전하며 뭇 민중이 동정의 눈물을 뿌리어,  이에 사람마다 '굶어죽음' 이외에 오히려 혁멍이란 한 길이 남아  있음을 깨달아, 용기있는 자의 그 의분에 못 이기어 약한 자는 그 고통에 못 견디어, 모두  이길로 모여들어 계속적으로 진행하며 보편적으로 전염하여 거국일치의 대혁명이 되면 간사, 교활, 잔혹, 포악한 강도 일본이 마침내 구축되는 날이라.

그러므로 우리의 민중을 깨우쳐 강도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민족의 새로운 생명을 개척하자면 양병십만이 한 번 던진 폭탄만 못하며 억천 장 신문, 잡지가 한 차례 폭동만 못할지니라.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발생치 아니하면 그만이거니와, 이미 발생한 이상에는 마치 낭떠러지에서 굴리는 돌과같아서 목적지에  도달하지 안하면 정지하지 않는  것이라, 우리 지나온 경과로 말하면 갑신정변은 특수세력이  특수세력과 싸우던 궁중의 한때  활극이 될 뿐이며, 경술 전후의 의병들은 충군애국의 대의로 분격하여 일어난 독서계급이 사상이며, 안중근, 이재명 등 열사의 폭력적 중심을  가지지 못하였도다. '민중, 폭력' 둘  가운데 하나만 빠지면 비록 천지를 뒤흔드는 장렬한 거동이라도 또한 번개같이 수그러지는도다.  

  조선 안에 강도 일본이 제조한 혁명 원인이 산같이 쌓이었다. 언제든지 민중의 폭력적 혁명이 개시되어 '독립을 못하면 살지 않으니라' '일본을 구축하지 못하면 물러서지 않으리라' 는 구호를 가지고 계속 전진하면 목적을  관철하고야 말지니, 이는 경찰의 칼이나 군대의 총이나 가사 교활한 정치가의 수단으로도 막지 못하리라.  

  혁명의 기록은 자연히 처절하고 장엄한 기록이 되리라. 그러나  물러서면 그 뒤에는 어두운 함정이요, 나아가면 그 앞에는 빛나는 활기이니, 우리 조선민족은 그 처절하고 장엄한 기록을 기리면서 나아갈 뿐이니라.  

  이제 폭력-암살, 파괴, 폭동-의 목적물을 대략 열거하건대,  

  1.조선총독 및 각 관공리  

  2.일본천황 및 각 관공리  

  3.정찰군, 매국노  

  4.적의 일체 시설물  

  이외에 각 지방의 신사나 부호가 비록  현저히 혁명운동을 방해한 죄가 없을지라도  만일 언어 혹 행동으로 우리의 운동을 완화하고 중상하는 자는 우리의 폭력으로써 마주할지니라. 일본인 이주민은 일본 강도정치의 기제가 되어 조선민족의 생존을 위협하는 선봉이 되어 있은즉 또한 우리의 폭력으로 구축할지니라.  

  5

  혁명의 길은 차괴부터 개척할지니라. 그러나 파괴만 하려고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하려고 파괴하는 것이니, 만일 건설할 줄을 모르면 파괴할 줄도 모를지며, 파괴할 줄을 모르면  건설할 줄도 모를지니라. 건설과 파괴가 다만 형식상에서 보아 구별될 뿐이요 정신사에서는 파괴가 곧 건설이니, 이를테면 우리가 일본세력을 파괴하려는 것이,

  첫째는 이족 통치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이란 그 위에 '일본'이란 이족 그것이 전제하여 있으니, 이족 전제의 밑에 있는 조선은 고유적 조선이 아니니, 고유적 조선을 발견하기 위하여 이족 통치를 파괴함이니라.  

  둘째는 특권게급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조선민중'이란  그 위에 총독이니 무엇이니 하는 강도단의 특권게급이 압박하여  있으니, 특권계급의 압박 밑에  있는 조선민중은 자유적 조선민중이 아니니, 자유적 조선민중을 발견하기 위하여 특권계급을 타파함이니라.  

  셋째는 경제 약탈제도를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탈제도 밑에 있는  경제는 민중 자기가 생활하기위하여 조직한 경제가 아니요, 곧 민중을 잡아먹으려는 강도의 살을 찌우기 위하여 조직한 경제니 민중생활을 발전하기 위하여 경제 약탈제도를 파괴함이라.  

  넷째는 사회적 불평등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약자 위에 강자가 있고 천한 자 위에 귀한 자가 있어 모든 불평들을 가진 사회는 서로 약탈, 서로  박탁, 서로 질투, 서로 원수로 보는 사회가 되어, 처음에는 소수의 행복을 위하여 다수의 민중을  해치다가 마지막에는 또 소수끼리 서로 해치어 민중 전체의 행복이 끝내 숫자상의 공이 되고 말 뿐이니, 민중 전체의 행복을 증진하기 위하여 사회적 불평등을 파괴함이니라.  

  다섯째는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하자 함이다. 왜?  전해내려오는 문화사상의 종교, 윤리, 문학, 미술, 풍속, 습관  그 어느 무엇이 강자가 제조하여  강자를 옹호하던 것이 아니더냐? 강자의 오락에 공급하던 도구가 아니더냐? 일반민중을 노예화하던  마취제가 아니더냐? 소수계급은 강자가 되고 다수민중은 도리어 약자가  되어 불의의 압제를 반항치 못함은  전혀 노예적 문화사상의 속박을 받은 까닭이니, 만일 민중적 문화를  제창하여 그 속박의 철쇄를 끊지 아니하면, 일반민중은 권리사상이 박약하며 자유향상의  흥미가 결핍하여 노예의 운명 속에서 윤회할 뿐이라. 그러므로 민중문화를 제창하기  위하여 노예적 문화사상을 파괴함이니라.  

  다시 말하자면 '고유적 조선의' '자유적 조선민중의'  '민중적 경제의' '민중적 사회의' '민중적 문화의'  조선을 건설하기 위하여 '이족 통치의'  '약탈제도의' '사회적 불평등의' '노예적 문화사상의' 현상을 타파함이니라. 그런즉 파괴적 정신이 곧  건설적 주장이라.

나아가면 파괴의 '칼'이 되고 들어오면 건설의 '깃발'이 될지니, 파괴할  기백은 없고 건설할 어리석은 생각만 있다 하면 5백년을 경과하여도 혁명의 꿈도 꾸어보지 못할지니라. 이제 파괴와 건설이 하나이요 둘이 아닌 줄 알진대, 민중적 파괴  앞에는 반드시 민중적 건설이 있는 줄 알진대, 현재 조선민중은 오직 민중적 폭력으로 신조선  건설의 장애인 강도 일본세력을 파괴할 것뿐인 줄을 알진대, 조선민중이 한 편이 되고 일본 강도가 한 편이 되어, 네가 망하지 안하면 내가 망하게 된  '외나무다리 위'에 선 줄을 알진대, 우리 2천만 민중은 일치하여 폭력 파괴의 길로 나아갈지니라.  

  민중은 우리 혁명의 대본영이다.  

  폭력은 우리 혁명의 우일한 무기이다.  

  우리는 민중 속에 가서 민중과 손을 잡고  끊임없는 폭력'암살, 파괴, 폭동으로써 강도 일본의 통치를 타도하고, 우리 생활에 불합리한 일체 제도를 개조하여 인류로써 인류를 압박치 못하며, 사회로써 사회를 박탈치 못하는 이상적 조선을 건설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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